설교 예화, 믿을 수 있게 쓰는 법
임솔성
"아인슈타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단에서 자주 듣는 한마디예요. 그런데 정작 아인슈타인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사랑받는 예화일수록 막상 확인해 보면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화는 창문이지 주인공이 아니다
좋은 예화는 본문의 한 생각을 비추는 창문이에요. 창문은 바깥 풍경을 보게 하지 자기를 보라고 있지 않죠. 예화도 말씀을 비출 때 제 몫을 합니다. 설교 전체를 그 하나의 생각으로 꿰는 이야기는 설교의 구조 글에서 따로 다뤘어요.
문제는 예화가 주인공이 될 때예요. 설교학자 정장복 교수는 예화 중심의 설교에서는 "그 날의 메시지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설교자의 흥미진진한 예화에서 듣게 된다"고 짚었어요. "예화 3개만 있으면 설교 한 편은 무난히 해결된다"는 말은 시대착오라고도 했고요. 회중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예화 일변도 설교에는 반응이 오히려 차갑다는 거예요.
그래서 방향은 분명해요. 예화는 적게, 정확하게, 본문을 섬길 때만. 장성길 목사의 말처럼 "예화에 의지하는 설교를 탈피하고 본문에 깊이 들어가겠다"는 결심이 먼저예요.
예화는 관찰과 독서에서 나온다
그럼 좋은 예화는 어디서 찾을까요. 기독신문에 소개된 다섯 갈래가 깔끔해요. 성경 본문 자체, 독서(책·신문·통계), 개인 경험, 직접 관찰, 그리고 평소의 체계적인 보관이에요.
여기서 한 가지만 기억하면 좋아요. 예화집이나 검색에 기대면 사실 검증의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셈이에요. 누가 언제 만든 이야기인지 모른 채 가져오니까요. 반대로 내가 직접 보고 읽은 데서 길어 올린 예화는 출처가 분명하고 생생합니다. 설교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좋은 이야기를 만나면 주제별로 모아 두세요. 그 서랍이 결국 가장 믿을 만한 예화집이 돼요.
가장 사랑받는 예화가 가장 위험하다
검증 이야기를 해볼게요. 의외로 가장 조심할 건 무명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 완벽해서 의심 없이 퍼지는 유명한 예화예요.
- "모두가 천재다. 하지만 물고기를 나무 타는 능력으로 평가하면…" — 아인슈타인 명언으로 도는데, 아인슈타인은 한 적 없는 말이에요. 프린스턴대가 펴낸 아인슈타인 어록집에도 없고, 비슷한 우화는 1898년 한 물리학자 글이 먼저예요.
- "거짓말은 진실이 신발을 신는 동안 세상 절반을 돈다" — 트웨인·처칠·스퍼전의 말로 인용되지만 셋 다 아니에요. 스퍼전도 1855년에 "옛 속담"이라며 빌려 썼고, 가장 오래된 출처는 1710년 조나단 스위프트예요.
- 다윈이 임종 직전 회심했다는 이야기 — 역사적 근거가 없어요. 창조과학 쪽에서도 쓰지 말자고 했을 정도예요.
- 해변에서 불가사리를 던지며 "이 한 마리에겐 다르잖아요"라던 이야기 — 원작은 로렌 아이즐리의 1969년 에세이인데, 그 유명한 대사는 원문에 없어요. 나중에 구전되며 덧붙은 거예요.
왜 이게 위험할까요. 지금 회중은 예배 중에도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요. 인용 하나가 틀리면 그 설교 전체의 신뢰가 흔들립니다.
검증한 뒤, 정직하게 인용한다
방법은 단순해요.
하나, 사실을 확인해요. 유명인의 말, 통계, 역사 일화는 1차 출처를 한 번 찾아보세요. 못 찾으면 빼거나, 적어도 의심하고요.
둘, 출처를 밝혀요. 이건 표절을 피하는 길이기도 해요. 실제로 한 목사가 다른 교회 목사의 설교 80여 건을 베끼면서, 그 목사의 새벽기도 경험까지 자기 것인 양 전한 일이 드러난 적이 있어요. 남의 이야기를 내 경험처럼 말하지 않는 것, 기본이에요.
셋, 불확실하면 불확실하게 말해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한 일화에 따르면" 한 마디면 충분합니다. 출처를 밝힌다고 예화의 힘이 죽지 않아요. 누구의 경험인지 정확히 밝혀도 그 이야기는 여전히 힘이 있거든요.
넷, AI를 쓴다면 한 번 더 걸러요. 챗봇은 없는 사례·통계·인물을 그럴듯하게 지어내요. 총신대 김대혁 교수도 "잘못된 내용이 포함될 위험"이 설교의 신뢰를 훼손한다고 짚었어요. AI가 내놓은 예화는 검증을 통과하기 전엔 강단에 올리지 마세요. AI 초안을 점검하는 다섯 가지는 따로 정리해 뒀어요.
성경도 이 자리를 분명히 해요.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엡 4:25,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정직이 예화의 힘이다
예화를 쓰지 말자는 게 아니에요. 정직하게, 잘 쓰자는 거예요. 강단의 힘은 화려한 이야기가 아니라 회중이 보내는 신뢰에서 나오니까요.
이 글은 정장복·장성길·김대혁 교수의 설교학 논의와 기독신문 보도, 공개된 인용 출처(프린스턴대 아인슈타인 어록집 등)를 토대로 정리했어요.
설교 스페이스도 찬양과 예화를 더 풍성하게 제안해요. 다만 검증된 척하지 않습니다. 찬양은 없는 곡을 걸러 내고, 예화는 사실 확인이 설교자의 몫임을 분명히 표시해요. 원고도 그래요 — 개요를 바탕으로 초안까지 만들지만, 그 초안을 설교로 완성하고 강단에서 선포하는 건 늘 목회자의 몫이에요. 설교 한 편을 정직하게 준비하는 자리에 설교 스페이스가 곁에 있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