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설교의 경계선, 어디서 멈출까

임솔성

AI로 설교문 초안을 받아 본 적 있는 목회자라면, 묘한 가책을 한 번쯤 느껴 보셨을 거예요. "이거 써도 되나." 한 집계에서는 한국 목회자의 AI 사용률이 2년 새 17%에서 58%로 뛰었다고 합니다(기독일보 미주, 2026). 쓰는 사람은 빠르게 느는데, 어디까지가 괜찮은지 합의된 기준은 아직 없어요.

이 글은 그 망설임에 한쪽 진영의 답을 들이미는 대신, 가톨릭부터 개혁주의·복음주의까지 실제로 만나는 자리를 짚습니다. 입장이 갈리는 듯한 논쟁을 훑어보면 의외로 한곳에서 만나거든요.

아무도 AI가 설교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먼저 입장을 펼쳐 볼게요. 뉴스앤조이가 전한 바에 따르면 교황 레오 14세는 "진정한 강론이란 신앙을 나누는 것인데, AI는 결코 신앙을 나눌 수 없다"며 사제들에게 AI로 강론을 준비하지 말라고 했어요. 개혁주의 쪽도 비슷합니다. 미국 정통장로교(OPC)의 한 목사는 자료 조사 보조로는 써도 설교 생성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고, 복음주의권의 에드 스테처는 "AI를 목회 주방의 sous chef로 생각하라, 수석 요리사는 목사다"라고 비유했어요. 진보·에큐메니컬 진영의 예일 신학교 학자조차 "AI는 사랑할 수도 고통받을 수도 없다"고 짚었고요.

지난 2월 성남에서 열린 한 설교 컨퍼런스에서 한국 목회자들도 같은 결을 말했습니다. "설교는 데이터를 넘어 영혼을 품는 자가 한다", "AI는 메시지를 생성할 수 있지만 그 메시지를 실제로 살았다고 말할 수 없다."

여기서 한 가지가 눈에 들어와요. 진영은 가톨릭부터 개혁주의·진보까지 다 다른데, "AI에게 설교를 맡기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모두가 동의하는 건 "AI는 설교자를 대체할 수 없다"는 한 줄이에요. 갈리는 건 오직 강단에서 얼마나 뒤로 물러난 자리에 선을 긋느냐입니다. 그러니 질문을 바꿔야 해요. '쓸까 말까'가 아니라 '선포와 준비 사이 어디에 선을 둘까'로요.

첫 번째 선 — 선포와 준비를 가른다

가장 넓게 합의되는 선이 여기예요. 준비는 도구의 영역이고, 선포는 사람의 영역입니다.

준비는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에요. 자료를 모으고, 주석을 비교하고, 개요를 잡고, 문장을 다듬는 일. Working Preacher의 케이시 시그먼도 브레인스토밍이나 원고 다듬기 같은 용도는 열어 두면서, "메시지 준비 자체를 AI에 위임하는 건 위험하다"고 했어요. 도움받을 자리와 넘기면 안 되는 자리를 가른 거죠.

선포는 다릅니다. 강단에서 회중에게 전하는 말은 정보가 아니라 살아낸 삶과 성령, 그리고 목자와 양 사이의 관계에서 나와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쓴 말이 이 자리를 잘 보여 줍니다.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뿐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기뻐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라 (살전 2:8, 개역개정 ⓒ 대한성서공회)

복음만 준 게 아니라 목숨까지 주었다는 거예요. 이 자리는 위임할 수가 없어요. AI가 아무리 매끈한 원고를 뽑아도, 그 원고를 살아낸 사람은 아니니까요.

두 번째 선 — 준비가 설교자를 만든다

"그럼 준비는 통째로 넘겨도 되나요?" 여기서 두 번째 선이 필요해요. 준비 과정 자체가 설교자를 빚기 때문입니다.

청교도 신학자 존 오웬은 이렇게 말했어요. "다른 이에게 잘 전해지는 설교는, 설교자 자신의 영혼 안에서 먼저 설교된 설교다." 스테처도 같은 자리를 짚습니다. "본문과 씨름하는 준비 과정이 설교자를 형성한다. 그걸 외주화하면 그 영적 성장을 우회하게 된다."

그러니 준비 안에서도 본문과 씨름하는 자리는 남겨 둬야 해요. AI는 막힌 데를 뚫어 주는 동료일 때 제 몫을 합니다. 헬라어 한 단어가 안 풀릴 때 길을 터 주고, 주석 여섯 권을 한자리에 모아 주는 식으로요. 하지만 씨름 자체를 대신하게 두면, 회중에게 전해질 말이 내 안에서 먼저 익는 그 과정이 사라져요. 도구로 쓰되 씨름은 내가 한다 — 이게 두 번째 선이에요.

세 번째 선 — 정직과 검증은 사람 몫이다

세 번째 선은 신학이 아니라 책임의 문제입니다. AI는 사실을 곧잘 지어내거든요.

설교학회지 『설교한국』에 실린 한 논문은 AI 설교 생성의 위험으로 환각, 훈련 데이터 편향, 한국어·보수 신학 자료 부족, 본문 해석 오류를 꼽았어요.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에요. 2023년 뉴스앤조이의 한 기자가 ChatGPT에 장례 설교문을 시켜 봤더니, 미국 대통령 이름을 틀리고, 있지도 않은 인터뷰를 지어내고, 한국 교단 정보를 부정확하게 내놨다고 합니다. 강단에서 나간 거짓 사실 하나는 신학적인 피해로 돌아와요.

표절도 같은 자리예요. 출처 없이 가져온 문장을 내 말처럼 전하면, 회중이 신뢰하는 관계에 금이 갑니다. 강단에서 나온 말의 책임은 끝까지 사람에게 있어요. 도구는 쓰더라도 검증은 양보하지 않는다 — 이게 세 번째 선입니다.

설교 스페이스를 이 선 위에서 만든 이유이기도 해요. 인용한 성경 절은 성경 데이터베이스로 한 절씩 대조하고, 원어와 주석은 검증된 출처값만 쓰도록 했습니다. AI가 그럴듯하게 지어낸 해석이 원고에 스며들지 않게요.

경계선은 신뢰의 문제다

세 선을 한 줄씩 모아 볼게요. 선포는 살아낸 사람의 몫이고, 준비 안의 씨름도 내가 하고, 검증의 책임도 사람에게 있습니다. 이 세 선이 모두에게 똑같은 답을 요구하진 않아요. 지금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돌아보는 좌표로 삼으시면 돼요. 결국 경계선은 기술이 무서워서 긋는 게 아니라, 회중이 누구를 신뢰하는가의 문제예요. AI가 준비를 거들어도, 회중이 신뢰하는 건 그 말씀을 살아낸 목회자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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